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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돌보기 노하우

할머니의 인내심이 아이 자존감을 높인다(2. 경찰관 기다리기)

by 바이오스토리 2021. 6. 7.
조부모의 인내, 관대함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인다

(손주돌보기 노하우 (2): 할머니의 인내, 관대함은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인다


손주를 데리러 간 집사람이 올 때가 지났다. 오늘은 어린이 집에서 손주를 데리고 근처 도서관을 들렸다 온다 했다. 책을 반납하고 오는 길에 이곳저곳 둘러본다 해도 올 시간이 한참을 넘어섰다. 전화를 집어들 때에 그제야 손주를 앞세우고 들어온다. 얼굴이 소금에 절여놓은 배추다.

“왜, 무슨 일 있었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무언가에 단단히 진을 뺀 모양이다. 집사람이 저런 얼굴 일때는 조심해야 한다. 가능하면 대꾸 하지 말고 빨리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파악해도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괜히 불난 집에 부채질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내 물음에 세상에 별일 다 있다는 투로 유쾌히 이야기한다.

“아, 글쎄 그 경찰관이 빨리 오지를 않는거야”

경찰관 소리에 놀라서 다음 말을 재촉한다. 그때 손주가 끼어든다.

“할비, 오늘 경찰관 아저씨 봤어, 내가 빠이빠이 하니까 아저씨가 손 흔들어 주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사태가 금방 파악이 됐다. 손주 주현이가 경찰차를 보았고 ‘경찰관 아찌’를 보고 손을 흔들어야 한다했고 그래서 끝까지 기다렸을 거다. 도서관에서 집에 오는 길에 파출소가 있다. 주현이는 파출소를 그냥 지나가는 법이 없다. 손을 흔들고 경찰관이 아는 체 해주어야만 그제야 발걸음을 뗀다. 내가 갔으면 그 파출소를 피해갔을 터인데 집사람은 ‘인내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파출소 앞에 막 주차하고 문으로 들어가는 경찰관에게 주현이는 손을 열심히 흔들었다. 하지만 미처 보지 못한 경찰관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가자며 손을 끄는 할미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빠이’를 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20분이 지났다. 기다리다 지친 할머니는 파출소 안으로 들어가서 준현에게 ‘빠이’시키고 일을 마무리하려 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외부인 출입이 통제된 파출소라 들어가기도 난감했다. 할머니 인내가 바닥을 보이는 그때 그 경찰관이 나왔다. 할머니가 소리친다.

“경찰관 아저씨, 왜 이리 늦게 와요?”

어리둥절한 경찰관이 자기에게 손을 흔드는 5살 아이를 봤다. 그리고 사태파악을 했다. 경찰관이 아이에게 주먹 악수를 하고 돌아서자 주현은 싱글벙글 이다.

이야기 전말을 들었지만 나는 오늘일이 잘 믿어지지가 않는다.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경찰관을 20분씩이나 기다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집사람은 퍼질러 있는 타입이 아니다. 일이 있으면 얼른 끝내야 한다. 만약 나와 같이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단 1분도 기다리지 않는다. 굳이 숫자로 이야기한다면 나는 1분, 아들딸은 10분이 최대 인내시간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손주는 20분임이 확인된 셈이다. 아니 말투로 보아서는 200분이라도 기다릴 태세다. 할머니의 무한한 관대함이다. 어디에서 그런 인내심이 생겨난 것일까.

집사람에게 물었다. 왜 그리 오래 기다렸냐고. 답이 간단하다.

“주현이가 하고 싶다쟎아‘

주현은 유치원에서 모르는 아이가 없다. 신설 아파트내부 유치원이라 서로 모르는 아이들끼리 3월에 처음 만났다. 불과 3달 만에 준현은 지나가는 대부분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처음 보는 엄마가 다가온다. ‘네가 주현이야?. 우리 아이가 네 이름을 자주 이야기해서 누군가 했다’며 반가워한다. 주현은 언제부터인가 자주 보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매일 오는 청소차 운전수가 시작이었다. 이제는 유치원 친구들에게서 친구부모에게로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주현이가 어른을 알아본다.

“저기 하태현이 아빠 온다”

그리고는 손을 흔든다. 자기를 알아봐주는 5살 어린이를 어른이 무척 반가워한다.

“오, 그래 주현이구나. 잘 있었어?”

이런 행사를 매일 치러야 해서 유치원 하교 길은 시간이 길어진다. 친구들을 다 보내야만 집으로 향한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기다린다. 매일 20분이다. 그리고는 한마디 한다.

“와, 주현이가 친구들을 아주 좋아 하는구나”

주현이가 친구들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 그리고 매일보는 아파트 청소차 운전수와 손을 마주 흔드는 것이 손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그게 많은 사람과 쉽게 소통하는 리더의 자질인지 아니면 얼굴모습과 이름을 잘 기억하는 좌뇌 기억부위가 발달한 과학자 모습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다만 그게 주현이가 좋아하는 거라면 어떤 것이던 키워주어야 한다는 걸 할머니는 온몸으로 알고 있다.

할머니들은 손주들을 기다려준다. 할머니들의 천성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한다.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아이들은 쑥쑥 자라는 것이 있다. 자존감이다. 자긍심이다. 자신감이다(박스기사).

할머니들은 살아오면서 직접 보아왔다.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그게 진정한 행복이란 걸 몸으로 체험했다. 인내심, 관대함은 할머니들을 ‘포근한 안식처’로 손주들에게 평생 기억하게 만든다. 그래서 살다가 힘들어지면, 할머니를 생각한다. 미 대통령 오바마도 대선 압박감이 최고인 시점에는 하와이의 할머니를 찾았다. 이제 주현이도 커가면서 힘든 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때 자신을 끝까지 기다려준 할머니를 기억하고 떠 올린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인생버팀목이 어디 있으랴.

할머니 인내는 최고 선생님이다. (2021.06.07)




조부모와 친하게 지낸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다

(좀더 싶은 상식) 조부모와 친하게 지낸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고 우울증이 낮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가까이 지낸 아이들이 자존감이 높아질까. 성공한 VIP들은 할머니의 포근함, 관대함이 그들을 지탱케 했다고 한다. 빌 게이츠는 매달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며칠씩 잠적한다, 아무도 오지 못하게 한다. 유일하게 들어가는 사람은 할머니다. 할머니들과 어린 시절을 잘 보낸 것이 커서도 심리적인 안정감과 자신감을 준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 같다. 그래도 궁금하다. 이게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현상인지 아니면 몇 명의 특이한 경우인지 궁금하다. 그래서 과학적 데이터를 찾아본다. 수백 명이 그렇다면 그건 맞다고 봐야 한다.

카네기멜런 대학 연구진이 조부모와 지내는 청년들의 자존감 정도를 측정했다(1). 측정법은 10개 항목이다. 나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가, 나는 괜챦은 사람인가, 내가 장점이 많은가 등등 항목으로 자존감을 측정한다(로젠베르그 측정법), 항목당 1-4점을 주는 형태다. 높은 점수가 높은 자존감을 나타낸다. 대학연구진은 조부모가 최소 1명 있는 18-27세 청소년 470명의 자존감을 측정했다. 자존감의 정도와 얼마나 조부모와 가깝게 지내고 있는지를 비교했다. 결과는 명확했다. 조부모와 가깝게 지낼수록, 청소년들의 자존감은 비례해서 증가했다.

사춘기는 청소년들의 시험대다. 이 폭풍의 시간은, 대응결과에 따라, 좋던 나쁘던, 이후 성장에 큰 영향을 준다. 이 시기 청소년들은 대부분 우울하다. 감정기복이 심하다. 이건 그들 탓이 아니다. 몸은 급격히 성장하는 데 이를 통제해 줄 뇌가 제대로 셋업이 안 된 탓이다. 즉 감정을 좌우하는 ‘뜨거운’ 두뇌부분(편도체)은 급격히 커진다(2). 이에 반해 감정의 중심을 잡는 ‘차가운’ 두뇌(전전두엽)은 미처 못 따라 간다. 그만큼 감정조절이 미숙하다. 게다가 주위친구들의 평가에 따라 반응하는 보상담당부위가 예민해진다. 또래가 부모보다 필요하고 부모 말이 잔소리로 들리는 이유다. 이런 ‘이유있는 반항’시절인 사춘기에 청소년은 ‘에덴의 동산’영화 속 제임스딘이 된다. 우울해진다. 때론 선을 넘는다. 이를 잡아줄 수 있는 것은 가족이다. 가족과 탄탄한 유대가 있는 청소년들은 사춘기 우울증을 가벼이 넘어선다. 가족 중에서도 우울증 예방에 가장 큰 공헌을 하는 사람은 조부모다.


사춘기에는 차가운 이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region)이 뜨거운 감정을 표출하는 피질하부위(Precortical region)보다 늦게 발달해서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미국 남 캘리포니아 대학은 사춘기를 지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조부모와 지내는 것이 청소년 우울증해소에 도움이 되는 가를 조사했다(2). 925명의 18-23세 청소년이 대상이다. 결과는 분명했다. 조부모와 자주, 가까이 지낼수록 청소년들의 우울증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가장 우울증을 덜 느끼는 청소년들은 부모와 잘 지내고 있고 더불어 조부모와 자주 접촉하는 경우다. 특히 편부모 슬하에서 자란 청소년들에게 조부모의 존재는 든든한 울타리다. 조부모의 관대함이 질풍노도(疾風怒濤) 같은 사춘기시절의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조부모들의 인내심, 관대함은 아이들, 특히 청소년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우울증을 낮추는 명약이다.

조부모의 따뜻한 품은 사춘기를 쉽게 넘어설 수 있게 한다

참고문헌


(1)Hakoyama, Mikiyasu and Malonebeach, Eileen E. (2017). Grandparent-Grandchild Relationship Effects on Grandparents’ General Health and Grandchildren’s Self-esteem. The International Journal of Aging and Society. 7. 101-114. 10.18848/2160-1909/CGP/v07i04/101-114.
(2)Somerville, Leah & Jones, Rebecca & Casey, Bj. (2009). A time of change: Behavioral and neural correlates of adolescent sensitivity to appetitive and aversive environmental cues. Brain and cognition. 72. 124-33.
10.1016/j.bandc.2009.07.003.
(3)Ruiz, Sarah & Silverstein, Merril. (2007). Relationships with Grandparents and the Emotional Well‐Being of Late Adolescent and Young Adult Grandchildren. Journal of Social Issues. 63. 793 - 808. 10.1111/j.1540-4560.2007.00537.x.

사진
(1)할머니의 보물(Grandmother's Treasure: Jozef Israëls. 1824-1911)

(2)사춘기에는 차가운 이성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region)이 뜨거운 감정을 표출하는 피질하부위(Precortical region)보다 늦게 발달해서 감정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게 된다

(3)‘난 괜챦은 애야’. 손주 자존감은 조부모와 친밀할수록 증가한다.


(4)(1846) 할머니와 손주들(1846, 런던, 윌리엄 홀만)